재미교포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3년 살고 느낀 것

John Lim
11 min readAug 26, 2021
1997년 한국 인천에서 살았을 때 찍은 사진을 들고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우리 가족이 한국에 머물렀다면 현재 내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생각하곤 한다.

Original English Article (영어 원본)

약 3년 전, 저는 제가 태어난 모국인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떠나기 몇 달 전에, 이 결정에 대해 부모님과 많이 다투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는 너희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미국에 왔어.”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돌아가려고 하는 거야?”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도, 저는 단호하게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이죠.

제가 기억하는 한, 저는 항상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스스로의 이중적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한국인 정체성이라는 것은 항상 저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타이틀과 같았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한국인보다 미국인이라고 여겼습니다.

재미교포로 사는 것은, 이상한 경계에 걸친 상태와 같다. 내가 진짜 속한 쪽이 어디인지 두 정체성 사이를 표류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결국 한국인 정체성은 여전히 저의 일부였습니다. 그것은 여러 면에서 저의 세계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 그리고 심지어 전반적인 인생관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문제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너무 깊이 새겨져서 저조차 더 이상 그것에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밀어냈고, 제가 의식하지 않고도 드러나는 듯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인생의 갈림길에 선 것 같았습니다. 인생의 4분의 1을 지날 때쯤 맞닥뜨리는 심리적 위기처럼요. 내 다른 정체를 모르는 건 거울을 쳐다보고 내 반쪽만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평생을 살고 싶냐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진정한 인간으로서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저는 스스로의 한국인 정체성을 탐색하고, ‘한국인’라는 단어에 배어 있는 모든 뉘앙스와 역사를 파헤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가는 것이 제 정체성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부모님께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설득할 수 있었고, 한국에 가야 저의 역사와 스스로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019년 2월, 한국 정부가 후원하는 영어 프로그램인 EPIK을 통해 영어 교사로 일하기 시작하며 짐을 싸서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1995년 살던 인천 집에서 찍은 가족 사진. 우리는 1998년 12월 말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나, 형 Peter, 어머니와 함께 미국 이민 2달 전 찍은 사진. 당시 우리가 지낼 아파트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먼저 미국으로 어려운 여정을 떠났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찍은 가족 사진. 뉴욕 Palisades 쇼핑몰 내의 사진 부스에서.

한국에 도착해서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그리고 항상 환영받던 한국에서의 적응 요령도 배웠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이후, 저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부산의 새로운 학교에 발령받게 되었습니다.

첫 3개월은 한국에서 머문 기간을 통틀어 가장 즐거우면서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진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 한 달은 한국의 직장 문화를 익히며 보냈습니다. 한국에서는 항상 개인의 관심사보다 협력적인 조화가 우선시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를 잘 대변하는 것은 한국의 모든 직장인들이 한 번쯤은 겪어봤을 사회적 모임, 회식이었죠.

회식이 진행되는 동안 선생님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의 삶, 학교, 그리고 때로는 술김에 서로에 대한 진짜 생각을 털어놓았습니다. 한국의 직장생활에는 스트레스가 따라붙곤 합니다. 때문에 고용주들이 직원들에게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회식 참여를 독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식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회식에서 일어나는 일이 라스베가스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어떤 선생님들은 베가스에 있는 것처럼 술을 마시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그 말은 선생님들이 회식에서 좀 더 태평하게 말하고, 직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자신의 밝은 면을 선뜻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직장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마치 애초에 회식이 없었던 일처럼 말이죠.

저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한국 선생님들을 더 잘 알고 싶다면 회식에 참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회식은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에게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회식 자리에서 직장에서의 차가운 면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고, 서먹한 분위기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회식을 하면서 배운 것은, 내면은 거의 모든 사람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두려움과 열망을 갖고 있으며, 인생을 살면서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똑같은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2019년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하는 모습

한국에서 배운 또 다른 교훈은,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일하는 법입니다.

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는 여러 명의 한국 선생님을 동료 선생님으로 배정받습니다. 원어민 교사의 주된 일은 동료 선생님들의 요구에 따라 수업을 돕는 것입니다. 단어 발음을 돕는 것에서부터 수업을 돌아다니는 것,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과제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동료 교사와 함께 일하는 것은, 한국 선생님의 권위를 넘어서지 않고 제 능력껏 가르쳐야 하는 섬세한 균형을 요구했기 때문에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한 수업 시간에 제 동료 선생님은 칠판에 소유격의 “their” 대신 “they’re”이라고 쓰는 실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끼어들기보다는, 수업 중에 선생님이 당황하지 않도록 그냥 내버려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동료 선생님이 다가와 손으로 이마를 가볍게 때렸습니다.

“존, ‘they’re’이 아니라 ‘their’이 맞죠?”라고 그녀가 물었고,

저는 “네.” 라고 대답했죠.

선생님은 웃어넘기며 다음 수업부터 학생들에게 실수에 대해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떠나기 전에, 제가 학생들 앞에서 실수를 바로잡지 않은 것을 고마워했습니다.

개인의 관심사보다는 협력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알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나자, 직장 생활과 한국에서의 일상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요령을 익히고 스스로에게 기대했던 것을 이해하는데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의 리듬이 편안해지면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특히 교실에서 학생들과 그들의 행동을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제 학생들은 지금껏 만나본 아이들 중 가장 똑똑하고 총명한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현재 부산에서 재직 중인 학교에서 찍은 사진. 가장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어서 가르치는 것이 영광일 정도이다.

해가 지날수록 저는 학생들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학생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나눈 대화 중에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 대화는 영어공부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학생들에게 왜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지 물었습니다. 대부분은 영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영어를 재미로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학생들 중 한 명은 “선생님, 저는 재미가 뭔지 모르겠어요. 전 그냥 공부하고, 먹고, 자고, 시험만 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학생은 5학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학생은 뒤이어 자기가 한 말이 마치 평범한 삶의 일부인 것처럼, 자기 나이에는 모두 그래야 하는 것처럼 얼버무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학생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낙담스러웠습니다. 그녀는, 부모님이 자신에게 학업적으로 뛰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며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예술을 하고 싶어하지만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르는 한 시험만을 통과하기 위해 매일 10시간씩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학력은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적 이동성을 나타내는 가장 큰 지표 중 하나입니다. 한국이 교육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이죠.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한국의 교육제도가 배움의 즐거움이 아니라 배움의 휘발성(배우고 잊음)을 장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끝난 후, 저는 그 학생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떤 조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우리 부모님이 한국에 머물렀다면 내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제 한국 생활 3년이 다가오니, 여기서 배운 값진 교훈들을 요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부모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 것에 대한 사랑, 존중, 존경의 시각입니다.

가끔씩 부모님이 무엇을 했는지, 낯선 이국땅으로 수천 마일을 이동하며 무엇을 느꼈을지 생각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또한 그들이 겪었을 모든 희생과 고통과 실패에 대해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제게 보여준 적 없는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침에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했던 나날들과 같은, 소리 없는 고군분투도 떠올립니다.

한국에서 사는 것은, 제가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부모님이 해 주신 모든 것에 대해 더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현재 미국에서까지 가족 사진들 모음.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에게 더 공감하게 된 것도, 그들이 이민을 온 이유가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제 눈에는 네일샵에서 9시에서 5시까지 일하는 아주머니가 그저 평범한 일꾼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앞에 온 모든 이민자들이 미국에서의 더 나은 삶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그녀와 같은 사람을 보게 되면, 가장 먼저 ‘그녀의 이야기는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한국에서 살았던 경험은, 가능한 한 우리의 뿌리와 유산에 대해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이민자로서의 도덕적 의무도 깨우쳐 주었습니다. 새로운 나라의 이민자로서, 우리는 원하지 않았던 새로운 환경에 내몰리게 됩니다. 당장, 우리는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큰 돈을 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많은 이민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나라에서의 로드맵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훌륭한 북극성과도 같습니다. 학업적,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것은 우리가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안락한 삶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원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꿈꾸기만 해야 했던 삶 말입니다.

물론, 단지 성공만을 좇아 진로와 삶의 선택을 이어나가다 보면, 인생과 경력에 대해 일종의 공허감이 들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자신의 뿌리와 출신지에 대해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애초에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애쓰는 이유를 더 자세히 설명해 줄 것입니다.

해외생활은 부모님들이 먼길을 떠나온 이유의 이면에 있는 더 큰 동기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바로 부모님들이 갖지 못했던 기회를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말하는 기회란 단순한 학업적, 경제적 성공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에 열정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최선을 다해 알아내는 것입니다.

해외에서 사는 경험은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정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공간을 줄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이 이끄는 새로운 진로를 짜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도 똑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만, 외국에서 사는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갈 시각과 소리, 그리고 경험을 줍니다. 해외생활의 가르침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한국에서 3년간 살면서 한국인 정체성과 함께 평화를 찾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기 있는 동안 저의 문화와 성장과정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 많이 배웠습니다. 아직 동료 한국인 선생님이나 제자들을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제 인생과 가족, 이민자 경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어 마음이 편안합니다.

한국에서 마지막 남은 몇 개월을 마무리하면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확인해야 할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더 남았든, 제 정체성에 대한 불타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결국 내면의 평화로 완전한 순환을 이룬 이 여정보다 더 만족스러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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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im

Writer, coffee enthusiast, tech geek, and occasional Korean cook.